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 처용무
처용무는 궁중에서 악귀를 물리치고 복을 기원하기 위해 추던 전통 무용으로서 오늘날에는 공연 예술로 계승되고 있다. 이 춤은 오방을 상징하는 다섯 명의 무용수가 처용의 형상을 바탕으로 장엄하고 활기차게 펼치는 궁중 무용이다. 오늘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 처용무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첫째, 처용무의 유래와 역사적 배경
처용무는 통일신라 말기에 등장한 궁중 무용으로서 악귀를 물리치고 복을 기원하는 의식에서 유래하였다. 헌강왕이 울산 인근 개운포에 행차하였을 때 하늘에 짙은 구름이 끼자 일관이 동해의 용이 부리는 조화라고 하였다. 이에 왕은 절을 짓게 하였고 동해에서 용이 일곱 아들을 데리고 나타나 춤을 추었다. 그 중 한 아들인 처용은 왕을 따라 수도로 와서 관직을 받고 머물렀으며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어느 날 밤 처용이 집에 돌아오자 역신이 아내를 범하려 하였고 처용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자 역신이 무릎을 꿇고 사과하였다. 이후 사람들은 처용의 형상을 대문에 붙여 악귀를 물리치고 복을 기원하였다. 고려 시대까지는 한 명의 무용수가 처용무를 추었으나 조선 시대 세종 때부터 다섯 명의 무용수가 오방을 상징하며 춤을 추게 되었다. 처용무는 음력 마지막 날에 나례 의식에서 두 차례에 걸쳐 추어졌으며 궁중 연례에서도 연행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처용무가 단순한 춤이 아니라 민속 신앙과 궁중 의례가 결합된 종합 예술임을 보여준다.
둘째, 처용무의 구성과 예술적 특징
처용무는 다섯 명의 남자 무용수가 동서남북과 중앙을 상징하는 오방의 색을 입고 추는 궁중 무용이다. 무용수들은 흰색 파란색 검은색 붉은색 노란색의 의상을 입고 팥죽색 얼굴에 하얀 치아를 가진 처용 탈을 쓰며 납 구슬 목걸이와 주석 귀고리를 착용한다. 검은색 사모에는 모란 두 송이와 복숭아 열매 일곱 개를 꽂아 벽사와 진경의 의미를 담는다. 춤은 수제천 음악에 맞추어 시작되며 신라의 번영을 기원하는 가사로 구성된 처용가를 부르며 왕에게 인사하고 무대 중앙으로 나아간다. 무용수들은 정방형 대열을 이루며 산작화무를 추고 십자형 대열로 바꾸며 삼현도드리 음악에 맞추어 수양수무와 무릎디피무를 연행한다. 이후 원형 대열로 바꾸어 왼쪽으로 돌고 다시 일렬 대열로 바꾸어 처용가의 다음 구절을 부른 후 송구여지곡에 맞추어 낙화유수를 추며 퇴장한다. 처용무는 장엄하면서도 활기찬 춤사위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양한 음악과 가사 대열 변화가 어우러져 궁중 무용의 예술성을 잘 보여준다. 특히 사람 형상의 탈을 쓰고 추는 점에서 다른 궁중 무용과 차별화되며 유교 철학의 오행설을 구현하는 상징적 의미도 지닌다.
셋째, 처용무의 문화적 가치와 전승 노력
처용무는 단순한 궁중 무용을 넘어 민속 신앙과 철학적 사상을 담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서 높은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처용의 형상을 대문에 붙여 악귀를 물리친다는 민간 신앙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으며 처용무는 이러한 신앙을 예술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오방의 색과 대열 구성은 유교의 음양오행설을 반영하여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처용무는 1971년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는 처용무가 한국의 전통 예술로서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처용무의 전승을 위해 전문 무용단과 전통 예술 기관에서는 정기적인 공연과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처용 탈의 제작 과정도 전통 장인의 기량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처용무는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적으로 공연되며 특히 서울의 고궁에서 자주 연행된다. 이러한 전승 노력은 처용무가 단절되지 않고 현대 사회에서도 그 의미와 가치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 된다. 처용무는 궁중 예술과 민속 신앙 철학적 사상이 어우러진 종합 문화유산으로서 앞으로도 지속적인 보호와 전승이 필요한 소중한 자산이다.